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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창덕궁 창경궁 차이

by                         2017. 9. 18.

 

창덕궁 창경궁 차이

 

사람들이 흔히 창덕궁과 창경궁 얘기가 나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조선 시대 역사의 일부이며, 현존하는 조선의 건축을 엿볼 수 있으며, 유네스코에 등록이 되어 있다는 것도 아는분들이 계시죠. 하지만 이름이 비슷해 창덕궁과 창경궁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면 과연 대답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실 저도 이번에 창덕궁 방문을 하기 전까지는 창경궁과 창덕궁 차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선시대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큰 틀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건 모르고 있었죠. 그래서 이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아래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창덕궁

서울시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복자락에 위치한 조선의 궁궐로 동쪽으로는 창경궁과 벽 하나를 담으로 삼아 맞닿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함께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고도 불렸던 창덕궁은 현재 유네스코로 지정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고려시대 궁궐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더 많이 사용됐었는데요. 아쉽게도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난 이 후 다시 지어졌으며, 경복궁을 다시 짓고 있을 동안 정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역사를 간단하게 되짚어보자면 조선 태종이 1405년에 경복궁 이궁으로 동쪽에 지었으며, 조선의 궁궐 중 임금들이 가장 오래 거처했던 궁궐이 바로 지금의 창덕궁입니다. 그 만큼 중요한 고궁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제한적으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창덕궁 내부에는 돈화문, 금천교, 인정전(창덕궁의 정전), 선정전(회의장소), 어차고,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 금호문, 영화당, 불로문, 애련지와 애련정, 연경당, 부용지, 부용정 일대, 대보단, 옥류천 등이 있습니다.

 

창경궁

세종 1419년에 건축한 궁궐로 처음부터 이름이 창경궁은 아니였습니다. 본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지어졌으나 성종이 창경궁을 한번 더 고쳐 지은 후 현재 이름인 창경궁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죠.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공간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하지만 인조 이괄의 난과 순조 대화재로 내전이 대부분 손실되었으며, 지금은 명정전과 명정문, 홍화문이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저는 창덕궁보다는 이 창경궁에 더욱 관심이 많이가게 되는데요. 영화 '사도'에서도 나왔던 이 곳은 생각보다 뼈아픈 작은 역사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짚어보겠습니다. 고종 때까지는 굉장히 웅장하고 멋진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일본 제국이 순종 황제를 달랜답시고 창경궁 내부 궁문, 담장, 전각 훼손을 감행하면서 궁 안에 일본식 건물을 세우거니와 동물원과 식물원까지 만들어 유원지로 조성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유원지는 일반인들에게 관람이 가능하도로 시켰으며, 1911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꿔 그 격을 낮춰버리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1983년 동물원을 없애고 이듬해 1984년 창경궁을 복원 및 이름을 다시 창경궁으로 바꿨습니다.

 



이 곳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장희빈을 처형했던 곳이기도 하며,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장소이기도 하답니다.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창경궁은 창덕궁과 더불어 본래는 조선의 정궁 및 보조 궁궐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중요한 곳입니다.

 

자 지금까지 창덕궁과 창경궁 차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요. 생각보다 차이는 간단합니다. 역사도 제가 소개해드린 것만 알고 있으시다면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궁금해하셨던분들은 제 글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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